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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시민아카이브학교 활동 돌아보기: Part 1💡
관리자 작성일 : 2025.01.14 조회 : 207

목차_시민아카이브학교(1).png


1️⃣시민아카이브학교란?


시민아카이브학교는 제작단이 직접 지역의 독자적인 역사·문화 요소를 발굴하고, 지역가치를 보존하기 위해 인천의 정체성을 영상으로 기록하는 아카이빙 프로젝트입니다. 17년도부터 9개년 연속 추진하는 인천센터 대표 영상제작 사업인데요!


올해는 인천역사문화총서인 「한국 최초 인천 최고 100선」 중 8편을 재해석하여, 제작단만의 시각으로 인천의 고유 역사를 아카이빙했습니다.


시민아카이브학교가 어떤 활동을 하는지 더욱 자세히 알고 싶다구요? 이번 게시글에서는 2024년 영상제작단 중 시민아카이브학교 프로젝트에 참여한 정성용 제작단, 류제혁 제작단, 김선경 제작단이 직접 제작한 콘텐츠 4편을 소개합니다.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지난 활동을 되짚어보아요💌



2️⃣정성용 제작단의 이야기 [우리가 몰랐던 인천의 새로운 발견]


시민아카이브학교는 인천시청자미디어센터가 2017년부터 매년 추진해 온 대표적인 영상제작 프로젝트이다. 이 사업은 시민 제작단이 직접 인천의 독자적인 역사와 문화를 발굴하고 이를 영상으로 기록하며 지역 정체성을 보존하는 데 중점을 둔다. 올해의 프로젝트 주제는 인천역사문화총서인 『한국 최초 인천 최고 100선』 오디오북을 재해석하는 것으로, 인천이 가진 특별한 가치를 시민의 눈으로 재조명하고 기록하는 뜻깊은 여정이었다.


나는 인천에서 태어나고 자라며 나름 인천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번 프로젝트 공고에서 강화도와 그동안 잘 몰랐던 새로운 장소들이 눈에 띄었고, 평소에 가보지 못했던 전등사와 부근리 고인돌이 포함되어 있어 큰 관심을 갖게 되었다. ‘나도 모르는 인천의 이야기를 발견할 수 있겠다’는 설렘과 함께 프로젝트에 지원하게 되었고, 이 두 장소를 주제로 영상 제작에 참여하게 되었다.


사진 02 E - 전등사 촬영 스케치.jpg


기획의 시작: 장소 선정과 촬영 계획 수립

지난 11월 26일, 프로젝트의 첫걸음인 오리엔테이션과 콘텐츠 기획 교육이 진행됐다. 전문 강사님의 기획 교육을 통해 영상 제작의 기초부터 상세 계획 세우기까지 탄탄한 과정을 배웠다. 이를 바탕으로 세부 일정을 수립하며 촬영 준비에 착수했다. 나는 기획과 촬영, 편집 과정 중에 기획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 기획이 구체적이고 세부적일수록 편집과 촬영에 시간이 줄어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많은 것을 꼼꼼하게 기획했다.


특히, 이번 프로젝트는 짧은 촬영 시간 내에 효과적으로 필요한 장면들을 담아야 했기에 동선 체크와 장면 구성에 많은 시간을 투자했다. 또, 촬영과 편집을 멘토링해 주실 강사님과 강화도의 역사와 문화를 안내해 주실 문화해설사님의 일정을 동시에 조율해야 했다. 처음에는 복잡한 과정에 부담을 느꼈지만, 사전에 철저히 준비하며 점점 자신감을 얻을 수 있었다.


사진 02 A - 즉석 인터뷰.png 사진 02 B - 전등사 인터뷰.png 사진 02 C - 고인돌 인터뷰.png


현장에서의 이야기: 강화도와의 만남

촬영 당일, 가장 걱정했던 것은 날씨였다. 겨울이라 혹시 비나 강풍이 불면 계획이 틀어질까 우려스러웠다. 다행히 날씨는 맑았고, 차가운 공기 속에서도 촬영은 순조롭게 진행됐다. 임유상 문화해설사님과 함께 강화도의 전등사와 부근리 고인돌을 둘러보며 새로운 지식들을 많이 얻을 수 있었다. 특히, 평소에 둘러보던 관광지가 문화해설사님의 해설을 통해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는 계기가 되었고, 다음에 인천에 있는 문화유적지를 보러가게 된다면 사전 지식을 알고 보면 더욱 효과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진 02 D - 전등사 촬영.jpg


촬영 중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임유상 문화해설사님과의 인터뷰였다. 사전에 준비한 질문지를 바탕으로 진행했지만, 현장에서 새로운 궁금증이 생길 때마다 즉석에서 질문을 던졌고, 해설사님은 항상 친절하고 상세히 답변해 주셨다. 덕분에 촬영은 단순히 영상을 제작하는 과정이 아닌, 강화도의 역사와 가치를 배우는 시간이기도 했다.


사진 03 C - 스튜디오 촬영.jpeg 사진 03 D - 스튜디오 촬영.jpeg 사진 03 E - 스튜디오 촬영.jpeg


편집의 도전: 영상에 담긴 고민과 해결

촬영 후 편집 과정에서 가장 큰 도전은 두 가지였다. 첫 번째는 임유상 문화해설사님의 인터뷰가 약 15분에 이르는 긴 내용이어서, 이 중에서 어떤 부분을 선택하고 영상에 녹여낼지 고민이 많았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전사문을 작성한 후, 해설사님과 내용을 공유하며 중요한 메시지를 추려냈다. 결과적으로 서로 신뢰를 쌓으며 편집 방향을 정할 수 있었고, 해설사님께서 오히려 감사 인사를 전해 주셔서 뿌듯함을 느꼈다.


사진 03 B - 고인돌 지도.png


두 번째는 강화도 유적지의 가치를 영상으로 표현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 현장의 풍경을 담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생각에 자료화면과 자막을 추가로 제작하기로 했다. 하지만 저작권 문제를 피하기 위해 적합한 자료를 찾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 이 과정에서 강화도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 더 깊이 이해하게 되었고, 최종적으로 만족스러운 결과물을 완성할 수 있었다.


사진 04 A - 전등사 전경.png 사진 04 B - 전등사 전경.png

사진 04 C - 부근리 고인돌 전경.png 사진 04 D - 고인돌 전경.png


마무리: 인천을 새롭게 바라보다

이번 시민아카이브학교 프로젝트를 통해 인천의 역사와 문화를 기록하며, 내가 몰랐던 인천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강화도의 전등사와 부근리 고인돌은 단순한 유적지를 넘어, 인천의 자부심을 느낄 수 있는 소중한 자산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번 경험이 앞으로의 영상 제작과 지역 탐구에 큰 밑거름이 될 것이라 확신한다.


작성자: 영상제작단 정성용


👀정성용 제작단의 최대 규모의 강화 부근리 고인돌감상하기



👀정성용 제작단의 가장 오래된 절 전등사감상하기




3️⃣류제혁 제작단의 이야기 [문학산성을 기록하며]


2024년도에 인천시청자미디어센터 영상제작단으로서 공모전 접수, 유튜브 콘텐츠 제작 활동에 참여했다. 하지만 이전년도에 비해 큰 활동을 한 것이 없다고 생각해 아쉬움을 갖던 찰나, '시민아카이브학교' 프로젝트 참여자 모집공고를 보게 되었다. 마침, 몇 년 전부터 문학산을 개인적으로 아카이브하고 있던 터라 기쁜 마음으로 ‘인천의 발상지 문학산성’이라는 주제를 선택해 지원했다. 보유하고 있는 문학산의 자료에, 문학산성에 대한 디테일을 더하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콘텐츠를 제작하기 위해 ①문학산성의 형태, ②문학산성의 시작, ③삼국시대 이후의 문학산성, ④현재의 문학산성, 이렇게 크게 4단계의 구성을 잡았다.


- 문학산성의 형태 : 문학산의 정상부에는 테를 두른 듯한 모양을 한 문학산성이 있다. 문학산의 지형을 최대한 이용하여 축성한 것으로, 토축으로 된 내성이 100m, 석축으로 된 외성이 200m 가량 되는 규모였다고 한다. 특히 정상부에는 약 5m 높이의 석축을 쌓았다고 전해지나 현재 대부분의 성벽이 붕괴되었으며 일부 구간에 한하여 정비가 이루어졌다.


- 문학산성의 시작 : 옛 문헌 『삼국유사』에서 미추왕 비류가 남하하여 기원전 18년 이곳에 도읍을 정하였다는 이야기를 전한다. 백제 건국설화에 의하면 "주몽의 아들 비류와 온조가 주몽이 북부여에서 낳았던 아들(유리왕)이 태자가 되자 남쪽으로 이동하여 비류는 미주홀에 도읍을 정하고 온조는 하남 위례성에 도읍을 정하였다"고 전한다. 비류가 죽고 온조가 십제에서 비류 백성을 합친 후 백제로 정하였다.


- 삼국시대 이후의 문학산성 : 문학산성은 왜국의 침입이 잦았던 고려 말기부터 조선 초기까지 주민들의 피난처로 이용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임진왜란 때는 이곳에서 왜군을 격파하기도 하였다.


- 현재의 문학산성 : 1962년 문학산 정상부에 미군 부대가 들어섰고. 1979년 공군이 들어왔다. 그리고 2015년 10월 15일 인천시민의 날 50년간 통제되었던 문학산성이 시민에게 개방되었다. 개방 후 역사 탐방 프로그램, 음악회, 각종 공연 및 행사 등으로 시민들이 사랑하는 산이 되었다. 매년 새해 1월 1일에는 비류왕의 해양 도시 건설 꿈인 문학산 정상 문학산성이 있던 그곳에서 인천시민이 새해 해돋이를 한다.


나는 ‘인천의 발상지 문학산성’이라는 주제를 듣자마자, 하늘에서 내려 보이는 문학산의 이미지를 머릿속으로 그려 보았다. 그래서 승인 기간을 고려해 프로젝트 참여가 결정되자마자 드론 촬영을 신청해두었는데, 제 시기에 승인을 받아 좋은 영상물을 포함할 수 있어 뿌듯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촬영해서 만들어 놓은 영상과 사진, 자료 조사, 문화해설사님 인터뷰, 문학산 포럼 참여, 미추홀 구청에서 자료를 받아 이야기와 그림을 만들어 갔다. 제작기간이 한정되어 있어, 직접 구하지 못했거나 저작권 문제로 활용하지 못한 자료는 ChatGPT에서 그림으로 만들었다.


이번 프로젝트 기간 동안 문학산을 두 차례 등반했다. 오를 때 마다 조금 힘들어서 후회도 있었지만, 완성 후 몸으로 뛴 고생 덕분에 더욱 뿌듯함이 몰려왔다. 끝으로 이번 프로젝트는 개별적으로 참여했지만, 영상제작단에 함께 소속된 MSG 팀원들이 많은 응원으로 격려해줘서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작성자: 영상제작단 류제혁


👀류제혁 제작단의 인천의 발상지 문학산성감상하기




4️⃣김선경 제작단의 이야기 [능허대를 제작하고]


인천시청자미디어센터 영상제작단에 소속된 나는 2024년 '시민아카이브학교' 프로젝트 참여자 모집공고를 보게 되었다. 인천역사문화총서인 『한국 최초 인천 최고 100선』 오디오북을 재해석하여 영상으로 만드는 프로젝트였다. 처음엔 역사적 지식이 짧은 나로서는 부담스럽기도 하고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하여 마음에 두지 않았지만, 그 동안의 활동을 좋게 본 센터 담당자님의 추천에 무슨 배짱이 생겼는지 얼떨결에 하겠다고 답을 하고 말았다. 그때부터 나는 고민과 걱정이 가득한 여정이 시작되었다.


시민아카이브학교란, 제작단이 인천의 역사와 문화를 영상으로 기록하는 인천시청자미디어센터의 대표 영상 제작 사업이다. 2017년부터 9년째 추진하는 메인 프로젝트라고 할 수 있다. 이번 사업에 참여하는 제작단 6명은 오리엔테이션을 거쳐, 전문 기획 수업을 듣게 되었다. 나를 제외한 5명의 자기소개를 들어 보니 다들 몇 년씩 이미 영상을 많이 제작한 경험이 있는 고수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영상을 공부한 지 얼마되지 않은 나는 ‘영상을 완성하지 못하면 어쩌지?’ 라는 두려움과 걱정만 가득했다.


8개의 주제 중 인천 연수구 옥련동에 위치한 능허대를 소재로 하는 '첫 번째 국제항 능허대'를 담당했다. 능허대는 오래된 백제시대 문화재인데 현재는 매립이 되어 관련된 흔적이 남아있지 않아 영상으로 담아 낼 내용이 너무 한정적이라는 것, 그리고 부족한 부분을 영상으로 채울 만한 그래픽 기술이 나에게 부족하다는 것, 그리고 마감기한이 매우 촉박하다는 문제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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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인터넷으로 관련된 자료를 찾아 능허대에 대한 내용을 파악하고, 사전답사를 위해 카메라를 들고 능허대공원을 찾아갔다. 생각보다 규모가 아담하고 조용한 분위기라 특별한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능허대지는 인천항의 시발점이며 백제시대 사신들이 오고 갔던 최초의 국제항으로서 역사적으로 중요한 장소인데, 이런 내용을 보는 사람들이 쉽게 이해 할 수 있도록 하려면 어떻게 기획해야 할까? 고민이 되었다. 공원 안으로 들어가니 전시패널에 역사적인 기록이 설명되어 있었고 이것을 토대로 쉽게 영상으로 표현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이곳저곳 촬영하며 구상하였다.


능허대에서 멘토링을 해 주실 박춘화 문화해설사님과 동행 촬영으로 약속 일정이 잡힌 날, 아침부터 마음을 단단히 먹고 궁금한 부분을 질문리스트로 만들고 촬영과 녹음에 실수가 없도록 점검했다. 처음 해보는 일이라 긴장했지만 인상이 좋으신 해설사님이 분위기를 편안하게 만들어 주시고 질문에 따른 설명을 열성적으로 해 주셨다. 능허대의 영상을 어떤 부분에 초점을 두는 것이 좋을지 조언을 구하고 촬영을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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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시청자미디어센터에서는 문화해설을 포함하여, 1:1 멘토링 일정을 세 차례 잡아주었다. 기획 멘토링에서는 멘토님께 미리 촬영한 영상을 보여드리고 촬영 기술이 필요한 부분을 어떻게 해결할 지 질문드렸다. 현재는 매립되어 볼 수 없는 바다를 영상으로 표현하기 위한 방법, 자막과 음악에 대한 조언도 요청드렸다. 멘토님께서 내가 제일 자신없는 기술적인 부분을 빠르게 인지하고 알려주셔서 압박감이 조금은 해소되었지만 문화재라는 부담감이 쉽게 떨쳐지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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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편집을 점검하는 멘토링 일정을 남겨 두고서는 시간적 여유가 없어서 총력을 다해야 했다. 그 때까지는 대부분의 편집을 마무리하고, 멘토님의 피드백에 따라 약간의 수정을 거치는 단계만 남겨두어야 했다. 책상에 온갖 자료를 펼쳐놓고 몇 시간씩 앉아 편집하느라 거북목이 되어버려 파스를 붙여 가며 씨름했다. 내가 제일 중점을 둔 부분은 능허대의 역사적인 가치를 이해하기 쉽도록 표현하고, 현재는 볼 수 없는 장면을 영상화하여 과거를 상상해 볼 수 있도록 하는 작업이었다. 영상에 움직이는 효과를 주기 위해 여러 자료를 참고하여 시도해 보고, 내레이션 원고를 작성해 여러번 수정을 거쳐 녹음을 마쳤다.


마지막 멘토링 날, 멘토님이 가편집본을 보시고 수정할 부분을 체크해 주셨다. 특히 AI로 바다를 표현한 것과 군데군데 움직임으로 아이디어를 낸 부분에 대해 격려해주셔서 노력이 헛수고로 끝나지 않아 안심이 되었다. 하지만 아직 마감일까지 끝내야 할 편집이 많이 남아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마감일 안에 제출하고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하지만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은 아니었다. 며칠 후 고증을 거친 전문가 자문의 피드백 자료를 받고 다시 수정해야 하는 과정이 주어졌다. 나름대로 체크했다고 생각했는데 영상을 며칠 후에 다시 보니 곳곳에 허점이 눈에 들어왔다. 피드백대로 출처를 꼼꼼히 표기하고 좀더 완성도 있는 영상을 위해 다시 고민하고 편집을 거쳐 드디어 4주간의 여정을 끝마칠 수 있었다.


이번 영상을 통해 백제시대 사신들이 공간적 기술적 어려움을 극복하고 바다를 건너가 국제교류를 했던 최초의 국제항인 능허대를 조명하고자 했다. 지금은 볼 수 없지만, 발자취를 이어갈 수 있도록 그 당시를 상상해 보는 영상을 만들고자 하였다. 처음엔 주어진 과제를 마감일까지 제출한다는 단순한 생각으로 시작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내가 만든 영상이 보는 사람에게는 그대로 진실로 받아들여진다는 사실이 책임감으로 다가왔다. 역사적 사실이 왜곡되지 않도록 주관적 시각보다는 객관적 시각에서 사실적으로 접근하여 제작되어야 한다는 사명감을 느끼게 되었다. 내가 만든 영상 중에서 제일 까다로운 주제였지만 포기하지 않고 완성하여 『한국 최초 인천 최고 100선』 중 하나의 기록으로 남기게 되어 더 없이 보람 있는 작업이었다.


작성자: 영상제작단 김선경


👀김선경 제작단의 첫 번째 국제항 능허대감상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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