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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시민아카이브학교 활동 돌아보기: Part 2🎬
관리자 작성일 : 2025.01.14 조회 : 166

목차_시민아카이브학교(2).png


1️⃣시민아카이브학교란?


시민아카이브학교는 제작단이 직접 지역의 독자적인 역사·문화 요소를 발굴하고, 지역가치를 보존하기 위해 인천의 정체성을 영상으로 기록하는 아카이빙 프로젝트입니다. 17년도부터 9개년 연속 추진하는 인천센터 대표 영상제작 사업인데요!


올해는 인천역사문화총서인 『한국 최초 인천 최고 100선』 중 8편을 재해석하여, 제작단만의 시각으로 인천의 고유 역사를 아카이빙했습니다.


시민아카이브학교가 어떤 활동을 하는지 더욱 자세히 알고 싶다구요? 이번 게시글에서는 2024년 영상제작단 중 시민아카이브학교 프로젝트에 참여한 정수환 제작단, 위연정 제작단, 김혜옥 제작단이 직접 제작한 콘텐츠 4편을 소개합니다.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지난 활동을 되짚어보아요💌



2️⃣정수환 제작단의 이야기 [마니산과 참성단을 조명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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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도부터 인천시청자미디어센터에서 영상제작단으로 활동하며, 2021년도에 처음 시민아카이브학교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이를 계기로 아카이빙 영상제작에 흥미를 느껴 어느덧 3번째로 참여하는 시민아카이브학교가 되었다.


시민아카이브학교는 인천이 갖고 있는 다양한 주제로 아카이빙 영상을 제작하는 활동이다. 올해는 『한국 최초 인천 최고 100선』 오디오북 중 선정된 8개의 주제를 영상화하는 활동을 했다. 나는 강화도에 있는 마니산과 참성단을 주제로 2편을 맡아 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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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영산, 마니산


마니산은 인천에서 가장 높은 산이다. 해발고도 472.1m로 산 정상에 오르면 인천의 많은 섬들과 강화도 지역이 한 눈에 들어오는 멋진 경치를 지니고 있다. 마니산은 하늘과 땅이 만나는 곳으로 풍수지리적으로 기가 가장 세다고 하여 오래전부터 영적인 산으로 여겨져 왔다. 산꼭대기에는 단군이 하늘에 제사를 지냈다고 전해오는 참성단이 있어, 마니산은 한민족 역사의 가치를 지닌 산임을 알 수 있다.


마니산의 역사와 전통은 과거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현대까지도 이어져오고 있다.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도 참성단에서 제사를 지냈다는 기록이 있으며, 매년 열리는 전국체전의 성화채화와 개천절 제례행사가 참성단에서 진행되고 있다. 이러한 마니산의 이야기가 유명해지면서 많은 사람들이 소원을 빌고 좋은 기운을 받기 위해 방문한다. 또 마니산은 산림청에서 선정한 대한민국 100대 명산에 속해있는데 이는 인천에 있는 산 중, 마니산이 유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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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 유일한 단군의 흔적


참성단은 강화도 마니산 꼭대기에 위치한 제단이다. 단군이 하늘에 제사를 지내기 위해 쌓은 곳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대한민국에 남아있는 유일한 단군관련 공간이다. 참성단을 보면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나다’는 천원지방 사상에 의하여 건축이 되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하단은 둥글고 상단은 네모난 모양으로 되어있는데 여기서 특이한 점은 하늘과 땅의 위치가 반대로 되어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실제 땅과 참성단의 하단부, 그리고 실제 하늘과 참성단의 상단부가 맞닿으면서 하늘과 땅의 원활한 소통을 위한 구조로 만들어진 것이다.


참성단이 있는 마니산의 위치를 보면 간척 이전에는 주변이 온통 바다인 섬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이렇게 외지고 높은 곳은 참성단을 짓기에 최적의 장소였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높은 곳까지 올라가서 하늘에 제사를 지냈을 당시 선조들의 마음은 어땠을지 궁금해진다. 참성단은 선조들의 지혜가 담겨있는 장소이니만큼 잘 보존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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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시민아카이브학교를 참여하면서 인천과 관련된 새로운 내용들을 알게 되었다. 마니산과 참성단의 존재를 처음 인지했고, 단군과도 관련된 공간이라는 점이 매우 흥미로웠다. 뿐만 아니라 임유상 문화해설사님께서 함께 마니산을 오르며 강화도의 특징에 대해서도 설명을 해주셔서 강화도가 왜 지붕 없는 박물관이라고 불리는 지 여실히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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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영산, 마니산’과 ‘참성단, 단군의 유일한 흔적’은 브이로그성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제작했다. 두 곳 모두 사실상 같은 장소에 위치하고 있고 많은 부분 내용이 겹쳐서, 처음 기획을 할 때에는 이 둘을 분리하여 제작하는 것에 어려움을 느꼈다. 기획과 편집 멘토링을 맡아주신 임승택 멘토님께서 직접 스토리텔러가 되어 이야기를 전해주는 방식에 대해 언급을 해주시고 요즘 다큐멘터리 트렌드에 대해서도 말씀해주셔서 어려웠던 부분이 많이 해결되어 콘텐츠 제작을 마무리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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촬영은 총 2회로 진행되었다. 영하를 왔다 갔다 하는 날씨에 한 손에는 브이로그용 스마트폰을, 반대쪽 손에는 삼각대와 카메라를 들고 2시간 동안 산을 오르며 촬영을 해야하는 결코 순탄하지 않은 일정이었다. 촬영 1회차에는 임유상 문화해설사님의 해설, 브이로그, 인서트 촬영을 진행했고 2회차에는 브이로그 및 인서트 추가촬영과 드론 촬영을 진행했다. 산을 한 번 오를 때 마다 두 편 분량의 촬영본을 확보해야 해서 정신은 없었지만 같은 장소에서 촬영을 할 수 있다는 점이 오히려 다행이었다고 생각한다.


평소에는 산을 오를 일이 없는데 이렇게 같은 산을 두 번이나 오르다니, 이렇게 다양한 장소를 가볼 수 있다는 점이 영상제작활동의 매력인 것 같다. 특히 시민아카이브학교는 인천 중에서 의미가 있는 장소를 방문할 수 있다는 점이 장점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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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아카이브학교 활동은 인천에 대해서 많이 알게 되고, 그것을 기록하고 누군가에게 알릴 수 있는 매우 가치 있는 활동이다. 그만큼 자료를 수집하고 공부를 하는 데에도 꽤 많은 시간이 필요한데, 이번 활동은 혼자서 단기간에 두 편을 제작해야하는 도전적인 활동이었다. 개인적으로는 주제가 많이 취약한 부분이어서 오히려 더 호기심을 갖고 활동에 참여했던 것 같다. 특히 강화도는 한두 번 가봤으면 다 가본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곳곳에 다 가치가 있는 장소들이었다는 것을 깨닫고 지역 역사에 대해 마음가짐이 변하는 계기였다.


항상 도움을 주시는 인천시청자미디어센터와 강사님 그리고 멘토님 덕분에 일정 내에 잘 마무리할 수 있었다. 다음 시민아카이브학교는 어떤 주제로 활동을 하게 될지 너무 기대가 된다.


작성자: 영상제작단 정수환


👀정수환 제작단의 대한민국의 영산, 마니산감상하기



👀정수환 제작단의 참성단, 유일한 단군의 흔적감상하기




3️⃣위연정 제작단의 이야기 [13세기 간척의 시대를 연 강화도 제작기 - 사소함의 기록]


# 사소한 시작


이력서와 자소서 준비, 그리고 전시회 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말아야지. 가을 무렵부터 세웠던 올겨울 계획은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이었다. 단단한 마음을 흔든 건, 인천시청자미디어센터 영상제작단 담당자님으로부터 닿은 한 건의 연락이었다.


2024년 영상제작단 활동에서 마감일로 매번 담당자인 한 주임님께 빚진 것 같은 일말의 부채감과, 인천시청자미디어센터에 고마움을 품고 있던 때라 고심 끝에 참여 결심을 했다. 영상으로 진 빚이니, 영상으로 갚고 싶다는 생각. 내게 그만한 영상 제작 능력이 있는지는 별론으로 하더라도.


그렇게 만난 『한국 최초 인천 최고 100선』이라는 오디오북의 영상 아카이빙 작업. 참여 주제 신청 당시 첫 기준은 접근성이었다. 교통면의 접근성. 인천 시내보다, 강화도는 차가 없으면 불편하니까, 내가 가는 게 누군가는 더 편할 것 같아서. 그 뒤 선택은 무의식이 이끌었던 것 같다.


가장 소중한 것은 가장 사소한 것에 있다는 것은 내 오랜 무의식의 기조였다.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는 부족하지만, 묵묵하게 사람들 곁을 지켜온 것은 땅에 있다고 믿었다. 어쩌면 가장 별 볼일 없는 것에서, 특별함을 만나는 기쁨을 사람들과 나누고 싶었다. 그래서 신청한 마니산과 간척사 중, 간척사가 배정되었다. 그리고 곧 위기에 봉착했다.


# 내부적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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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척은 여러 가치 판단이 따른다. 마침 무분별한 간척에 대한 부정적 입장의 작품으로 작은 전시회를 준비하던 터라 막연하게 위대하다거나, 자부심 넘치는 좋은 이야기로 표현하는 건 조심스러웠다.


사람들 앞에 간척의 역사를 어떻게 이야기해야 옳을까. 영상 제작 때마다, 영상이 상식적이고 도덕적인 범주에 있는지 검열했지만, 이번에도 자기 검열은 어려웠다. 역사를 왜곡 없이, 도덕적 문제없이 영상을 만들 수 있을까? 누구에게도 상처나, 불편을 주지 않는 선에서 이 답을 찾을 수 있을지 불안했다. 결국, 이미 제작된 오디오북의 리딩을 따라 영상을 붙이는 정도의 작업만 해야겠다는 것이 기획 첫 수업이 시작되기 전까지 계획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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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우와 폭설이 반복되는 무렵, 오리엔테이션과 기획 첫 수업이 시작됐다. 권우정 영화감독님이 기획 수업 강사셨는데, 훈훈하게 이어지던 첨언의 분위기 속에서도 강사님의 피드백은 정확했다. 오디오북 흐름대로 통시적으로 역사를 나열하고 마무리하겠단 내게, 강사님은 문제점을 콕 집으셨다. 감성은 하나도 없는 영상을 만든다는 건데, 그 점이 영상으로서 어떤 가치가 있나 하는, 일종의 본질을 꿰뚫는 날카로운 질문이었다. 객관적 나열로 가치 판단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고 생각한 나의 쩨쩨한 수작은 강사님 앞에선 통하지 않았다.


감성을 담으려면, 최소한 간척 사업에 대한 가치 판단이 선결되어야 했는데 답할 수 없었다. 간척을 부정적으로 본다면 역사 아카이빙은 산으로 갈 것이고, 긍정으로 본다면 내가 목격하고 만났던 사람들의 비극은 한낱 허공에 흩어지고 말 것들이라고 치부될까 두려웠다. 생각을 거듭할수록 겁쟁이가 되는 바람에 발전 없이 첫 수업을 마치며 위기감을 느꼈다.


# 길은 어디에도 있다.


사진3.JPG‘이렇게 해서 시간 안에 완성이 될까?’


부지런을 떨어 답사를 갔을 때, 다른 문화해설사 분들께 강화도 내의 간척지 이야기를 듣고, 때로는 학자들의 논문들을 통해 부족함을 채우는 과정은 깊이 있고 균형 잡힌 시각을 빌리게 했다. 준비 과정에서 읽은 논문과 학술지를 합치면 35개가 넘었고, 고려사와 고려사절요, 한자로 된 고지도들을 모으고 해석하는 것도 수일이 걸리는 작업이었지만, 집요한 성미에 맞았다.


다만 얼마나 걸릴지 모를 해병대 공문절차를 밟기 위해서 촬영콘티가 시급했기에, 논문 7개를 읽은 후 만든 엉성한 촬영콘티를 들고, 항상 섬세한 멘토링을 해주시는 김지원 작가님과 만났다.


구어체가 아닌 문어체로 작성된 대본, 친절함이 만든 장황함, 정해진 시간을 초과함에도 덜어내지 못하는 내용들 등 작가님의 피드백은 멘토링에 대한 애정만큼 많았다.


다행인 건, 이 무렵은 가치판단이 끝났었다. 고려와 조선 시대의 간척사업은 방법상 환경을 근거로 부정적으로 볼 수 없었다. 또 근현대 간척사업에서 그 지역민들의 생계 수단인 갯벌을 매립지로 빼앗거나, 식량 확보라는 미명하에 힘 있는 자와 그 이해관계인들의 사유화로 점철된 농경지로의 간척들은, 농경사회인 고려와 조선의 간척과는 결이 다르기에, 같은 잣대를 들이댈 수 없었다. 그렇게 간척사를 설명할 준비를 마쳤다.


하지만 방송국 직원이 아닌, 일반 시민의 군부대 촬영허가 절차도 난감했다. 몇 군데로 돌려가며 통화하는 것도, 담당 정훈 장교가 귀찮거나, 달갑지 않은 내색임에도 내키지 않는 연락을 재차 하는 건 진이 빠졌다. 해병대 공문 절차와 소통 과정에 질려서 절차가 요구되는 기관의 허가는 피하고 싶었지만, 역사물에서 고지도나 고서를 자료화면에 넣는 건 중요하기도 했고, 선두포축언시말비가 있는 강화역사박물관은 반드시 촬영이 필요한 곳이었다. 다행스럽게, 강화역사박물관의 기관장 분을 비롯한 직원 분들과 규장각 담당자 분의 친절하고 재빠른 협조 덕분에, 수월하게 촬영준비의 마지막 고비를 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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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간이 켜켜이 중첩된 공간에서 만난 사람들


“역사는 시간, 공간, 인간의 ‘쓰리’간 이다.”


역사 선생님이 하시던 말씀인데, 그 후부터 내게 역사 공부는 교과서 속 텍스트가 아니라, 어떤 시공 속 누군가와 만남이었다. 생생하게 남은 사람들의 이야기는, 여전히 한국사능력시험 1급은 별다른 준비 없이도 통과하는 소위 역사덕후로 만들었다.


그런 덕후력 만렙인 내게도, 민통선 지역이라 알려진 것이 적은 이번 촬영은 지명이나 구전으로 통하는 정보들이 퍼즐을 맞출 조각이었기에 주민들과 지역기관의 취재가 여느 때 보다 중요했다. 결국, 현재의 공간에서 과거의 공간을 걷고, 그 시간 속에 존재한 인간들의 이야기를 추적하는 과정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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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동도는 대부분 학술지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는데, 다행히 지리학자의 논문과 저서가 많은 도움이 되었다. 또 강화문화원에서 제공해준 자료와 취재는 논문에 살을 붙이기 좋았다. 그렇게 고려 간척지 추정 장소들을 찾은 건 큰 수확이었다. 우선 논문에서 지목한 장소들을 취재 장소로 넓게 특정 후, 옛 지명을 정리했고, 촬영당일에 교동면사무소 직원 분들께 1차적 도움을 받았다. 2차적으로는 직접 주민 분들을 취재하면서 살피는 형태였는데, 그 과정에서 지석리 어르신의 도움이 컸다. 또 조사 장소의 연혁을 비롯해서 옛날에 배가 들어오던 자리에 관한 이야기는 교동도의 평야에서 바다를 상상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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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도에서는 선두평 조사 과정에서 만난 주민 분들이 말씀하신 선두포축언시말비를 무렵 교수들이 찾아와 연구하던 생생한 목격담은 인상 깊었다. 게다가 우리의 근현대사에서 강화도 내의 간척사업이 또 주민들에게 어떤 상흔을 가져왔는지 듣는 것은 안타까웠다. 아무리 해결하려 노력해도, 거대 권력 앞에 바다를 빼앗겨서 슬펐다는 주민분의 말씀은 현대의 간척에 관해 입체적인 고민으로 이어지게 했다.


고려의 천도를 어떻게 바라볼지 지배층에 대해 이견이 존재하지만, 적어도 강화도와 교동도의 갯벌을 직접 손으로 메운 이들은 몽골의 침략기 전란 속에서도 삶을 포기 할 수 없던 그 시대의 무명씨들이었다. 강도시기 팔만대장경, 고려청자 같은 찬란한 유산들과 더불어 가장 보통의 사람들이 남긴 찬란한 유산은 강화도와 교동도에 땅으로 남아 존재해온 간척지이지 않을까.


거의 일주일 내내 촬영을 하러 강화도와 교동도를 오가면서 내가 만난 사람들은 평범한 사람이었다. 보통의 일상 속 우리가 800년 넘게 오래도록 남겨온 간척의 역사를 다루며 내가 만난 건 현재의 우리이자, 과거의 우리였다. 그리고 그들의 도움으로 촬영을 마친 건 사소함이 모인 특별한 경험이었다.


작성자: 영상제작단 위연정


👀위연정 제작단의 13세기 간척의 시대를 연 강화도감상하기




4️⃣김혜옥 제작단의 이야기 [영상제작 활동이 즐겁다! 시민아카이브학교 참여 활동기]


필자는 10여 년 전 인천시청자미디어센터에서 미디어교육을 받은 이후로, 영상제작단으로서 다양한 영상제작 활동을 하고 있다. 심지어 미디어교육 강사 자격증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강사 활동까지 하고 있다.


영상 제작은 꼼꼼한 기획이 먼저.jpg


그동안 시민아카이브학교로 ‘인천고택’ ‘해양설화’ 편에 참여했었다. 올해는 이어서 『한국 최초 인천 최고 100선』 중 '왕도의 공간 유일의 7대어향'을 주제로 아카이브 제작에 참여하게 되어 감사했다.


시민아카이브학교 참여자들은 오리엔테이션을 시작으로 권우정 강사님의 기획교육을 수강했다. 강사님은 성북 마을 미디어의 아카이빙 콘텐츠를 예시로 시청대상을 먼저 정하고 텍스트로 재현하거나, 관련 전문가의 인터뷰를 추가하는 방식에 대해 안내했다. 또한, 모든 아카이브 영상제작에 인트로를 통일하고 음악이나 오디오북과 하이라이트 그리고 고화질 이미지를 자료 출처 표기 등과 함께 사용하는 방법 등을 논의했다.


영상 촬영하는 필자.jpg


영상제작은 꼼꼼한 기획과 제작 계획, 촬영 및 편집 등으로 시작되었지만 작업은 다소 느리게 진행되었다. 왜냐하면, 필자는 이제 시니어 활동자의 나이로 촬영이나 편집 작업 중에는 노안으로 안경 2개를 번갈아 착용을 해야 했다. 또한, 번거로운 일들이 자꾸 생겼기 때문이다.


멘토링중인 필자.jpg


젊은 제작단들과 멘토님들 사이에서, 느리지만 천천히 가도 될 만큼 인천시청자미디어센터에서 배려받을 수 있었다. 다른 영상제작자들보다 특별 배려를 받는 것은 아니고 멋진 미디어 전문강사님들과의 1:1 멘토링 덕분에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어서 제작 기간 내 작업을 할 수 있었다. 올해 시민아카이브학교에서 한 편의 아카이브 영상을 무사히 완성할 수 있었음이 무척 감사하다.


이번 시민아카이브학교에서 필자가 제작하게 된 작품은 '왕도의 공간 유일의 7대어향'편이다. 인천이 왕의 어향(고향)으로 오랜 세월 존속할 수 있었던 이유는 오랜 세월 세력가의 집안이었던 인주이씨(인천이씨), 부평이씨, 강화위씨 이야기에서 찾을 수 있었다.


한국 최초와 인천 최고라는 수식어를 갖게 된 기록들은 인천 시민들의 큰 자부심이 되고 있었다. 왕의 외척으로 7대 80여 연간 세도를 누려온 세도가 중 인주이씨(인천이씨)를 주제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우선 인주이씨(인천이씨)의 재실이 있는 원인재에서 해설과 함께 그 흔적을 담았다.


박춘화 해설사님과 함께 촬영중인 필자.jpg


인천 연수구에 위치한 원인재에서 단법인 해반문화 국가유산교육 센터장이신 박춘화 문화해설사님의 해설로 촬영을 시작했다. 원인재는 왕의 외척 중 인주이씨(인천이씨)의 재실이 있는 곳으로 옆에는 이허겸의 묘가 있었다. 이허겸의 묘 앞에는 고려 왕릉 주변에서 볼 수 있는 문인석이 세워져 있었다. 이것은 인주이씨(인천이씨) 10세손인 이허겸이 왕의 외척으로 당대의 세도가였음을 보여주는 근거다.


영상 편집하는 필자.jpg


원인재를 중심으로 인천이 왕의 어향으로 존속할 수 있었던 이유는, 이허겸으로 이어진 인주이씨(인천이씨)가 오랜 세월 왕의 외척 가문이었기 때문이었다. 해설사님의 인주이씨(인천이씨) 관련 해설 중 영광굴비 이야기도 재미있었다. 굴비는 1126년 고려 시대에 영광으로 유배되었던 이자겸이 ‘굴비’를 맛본 뒤 맛이 뛰어나 임금에게 진상품으로 올리면서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겠다는 의미로 굴비라 명명하였다고 한다. 이때부터 영광굴비는 임금님의 수라상에 진상되고 명물로 등장하여 주목을 받게 되었다는 이야기였다.


왕도의 공간 원인재에서 인천이 왕의 어향으로 7대 80여 년간 유지할 수 있었던 역사 이야기를 짧은 영상으로 제작하였다. ‘왕도의 공간 유일의 7대어향’ 이야기를 5분이란 시간에 담아내기엔 다소 부족한 면이 많아 보인다. 그러나 2024년을 마무리하며 인천시청자미디어센터에서 시민아카이브학교에 참가할 수 있어서 보람 있었다. 앞으로도 『한국 최초 인천 최고 100선』의 이야기가 좀 더 많은 사람에게 관심이 모아지길 기대해본다.


작성자: 영상제작단 김혜옥


👀김혜옥 제작단의 왕도의 공간 유일의 7대어향감상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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