센터 새소식
12월 7일, 일요일.
차가운 겨울 공기를 가르며 국립세종수목원으로 향하는 나의 마음은 설렘보다는 팽팽한 긴장에 가까웠다. 그곳에서는 <한 겨울의 고흐>라는 기획 전시가 한창이다. 그리고 오늘, 내가 빚어낸 영화 <빈센트>가 전시의 온기가 감도는 그곳에서 관객들과 만난다.
한국수목원정원관리원과의 인연은 작년 초, 세종시청자미디어센터의 ‘ESG 콘텐츠 크리에이터’라는 생경한 이름표를 달게 되면서 시작됐다. 기술적으로는 서툴렀지만 열정만큼은 뜨거웠던 시민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카메라를 쥐는 법부터 나레이션을 위한 호흡까지, 우리는 미디어라는 낯선 언어를 한 자 한 자 배워 나갔다.

서툰 걸음으로 시작했지만, 수목원의 밤을 담아낸 나의 첫 작품 <특별한 야행>은 MBC 충북의 전파를 탔고, 이어 제작한 <우리의 작은 숲>은 KTV에, <지구를 살리는 탄소정원>은 KBS와 조치원 필름로맨스 영화제에 이름을 올렸다. 내나라여행박람회에서는 세종시를 대표하는 영상으로 선정되어 수상하는 영광도 안았다. 한국수목원정원관리원은 우리에게 풍부한 이야기의 토양을 제공했고, 세종시청자미디어센터는 장비와 교육이라는 든든한 날개가 되어 주었다.


올해, 나는 또 하나의 새로운 도전에 몸을 던졌다. 바로 AI였다. 그러나 인공지능이라는 미지의 바다는 생각보다 거칠었다. 기술로서만 AI를 대할 때, 이야기는 단단한 뿌리를 내리지 못한 채 모래알처럼 흩어졌다. 방황하던 나를 붙잡아준 것은 다큐멘터리를 만들 때마다 스스로에게 던졌던 본질적인 질문, “왜?”였다.
왜 이 작품이어야 하는가. 왜 AI라는 도구를 써야 하는가.
나는 인공지능의 화려한 연산 뒤로 숨지 않기로 했다. 시나리오 작법과 미장센, 플롯의 기초부터 차근차근 공부하며 모든 프레임에 ‘이유’를 심었다. 내가 답할 수 없는 장면은 관객에게도 보여줄 수 없다는 생각이었다. 결국 중요한 것은 기술의 사양이 아니라 영화의 본질이었다. 기술 그 자체에는 예술이 필요 없지만, 예술은 기술이라는 도구를 빌려야 비로소 완성된다. 나는 AI라는 기술을 통해 내가 꿈꾸던 예술을 구현했고, 그렇게 탄생한 <빈센트>는 국내외 13개 영화제에서 그 가치를 인정받았다.

이번 국립세종수목원 상영회는 단순한 상영 행사에 그치지 않았다. 고흐를 다룬 AI 영화 <빈센트>를 한국수목원정원관리원의 고흐 기획 전시를 찾은 관람객에게 선보이며, 관객들이 AI라는 새로운 창작 방식을 자연스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기획된 자리였다. AI에 대한 시대적 갈증과 고흐 기획 전시가 만나며 특별한 시너지가 만들어진 것이다. 이번 상영은 일회성 행사로 끝나지 않는다. <빈센트>는 12월의 마지막 날까지 국립세종수목원에서 상시 상영되는 기회를 얻게 되었고, 오늘은 그 의미 있는 시작을 알리는 첫 자리였다.
상영 30분 전, 수목원에 도착했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미리 현장을 점검하고 있던 세종시청자미디어센터 직원의 모습이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힘을 보태준 센터 직원들의 손길에 가슴 한구석이 뭉클해졌다. 하나둘 자리를 채운 관객들 사이로 정적이 흐르고, 이내 AI가 만들어낸 <빈센트>의 세계가 스크린 위에 펼쳐졌다.

4분 30초.
누군가에겐 짧은 찰나일지 모르나, 내게는 지난 2년의 시간이 응축된 결정체였다. 세종시청자미디어센터와 국립세종수목원과의 인연, AI라는 벽 앞에서 느꼈던 좌절과 환희, 그 모든 감정이 스크린 위에서 교차했다. 상영 후 이어진 관객과의 대화 시간, 쏟아지는 시선 속에서 무슨 말을 했는지조차 기억나지 않을 만큼 상기되어 있었다.

모든 순서가 끝나고 멍하니 서 있을 때, 한 관객이 조용히 다가와 말했다.
“영화 엔딩에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울컥 쏟아졌어요. 정말 잘 봤습니다.”
그 한마디에 팽팽했던 긴장은 눈 녹듯 사라졌다. AI의 목소리를 빌리고 AI 배우가 등장하는 영화였지만, 결국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 것은 사람이었다. 기술은 차가운 알고리즘일지라도, 그것을 운용하는 철학과 본질은 결국 ‘사람’에게 있기 때문이다.
오늘의 이 감동적인 무대를 가능하게 해준 세종시청자미디어센터와 한국수목원정원관리원, 그리고 나의 <빈센트>를 기꺼이 안아준 모든 관객에게 깊은 감사를 전한다.

글 방준식, 사진 남종우